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꽤 많은 국경이 닫힌 이 시국, 독일로 교환학생을 간다. 내가 건강에 무심한 건지, 생각 외로 긍정적인 성향을 가진 건지, 아직 비행기 밖에 타지 않았지만 오히려 좋은 것 투성이다. 뭐가 그렇게 좋았냐면 우선 공항이 한산해서 좋았다. 정말 말 그대로 줄 설 일이 없었다. 혹시 두고 온 건 없는지, 놓친 절차는 없는지 체크하느라 부산하지 않아도 되었다. 체크인은 이미 모바일로 다 했고, 수하물 부치고, 보안 검사 받고, 출국 심사하니 끝. 위탁 수하물로 부친 전기 파리채에서 건전지를 분리해야 하는 줄 몰라 불려갔는데도 시간이 넉넉했으니 말 다 했다. 공항에서 꼭 마시는 공차도 한 잔 마시고, 정말로 한국 땅을 떴다.
나는 창밖 보는 걸 좋아하면서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옆자리 승객에게 아주 성가신 승객이다. 게다가 장시간 비행도 오랜만이라 걱정했는데, 얼랄라- 코로나 때문에 승객이 많이 없어 자리 이동이 자유롭다. 한 명이 세 자리를 다 차지해도 자리가 남는 모양이다. 그래서 12시간 동안 창밖도 보다가, 책도 읽다가, 잠도 잤다가, 화장실도 다녀오며 눕코노미 비행을 즐겼다.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좋아하기 위한 추진력을 얻고자 떠난다. 짐을 싸는데 가장 먼저 생각난 책 두 권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그리고 ‘나의 문구 여행기 :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에 대하여’ 이었으니, 말 다 했지 뭐. 그동안 살아왔던 환경과 전혀 다른 곳에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 대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고 그걸 열렬히 좋아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그것들을 열렬히 사랑하며 살아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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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지금이어야만 했거나 내가 안전불감증인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4학년 1학기였고, 우리 학교는 교환 학기를 마지막으로 졸업할 수 없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어 교환학생, 휴학, 또는 초과 학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지난 학기에 이미 인턴을 하며 휴학을 했기에 남은 선택지 중 교환학생이 가장 매력있었다. 회사 생활을 연장할까도 고민했지만, 팀원분들의 과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내 삶의 밑거름이 될 것 같았다.
첫 사회생활을 하고, 자취방 짐을 빼고, 교환학생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 7달 동안 쉴 틈 없이 달려왔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12시간의 휴식은 지루하긴커녕 꽤 달콤하다. 챙길 것도 많은데 굳이 그동안 받았던 편지 중 몇 통을 챙겼다. 자취방에서도 그랬듯이, 막상 가면 자주 펼쳐보지는 않겠지만, 존재만으로도 나한테 힘이 되어준다고 해야할까. 다시 읽으니 오늘 더 마음에 와닿은 문장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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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옆에서 안아줄 수 있는 한별이로 자랄 테니까 우리 금방 만나자. 사랑해, 내 영원할 친구! - 2021년 2월 18일, 한별
2년 뒤면 너는 뭘 하고 있을까? 졸업은 했으려나...? 다른 친구들은 대충 예상이 되는데 참으로 예상이 힘들구만... 그래도 예상이 힘든 만큼 가장 기대되는 것 같아. 늘 그렇듯이 너는 마음 가는 일들을 하고 있겠지? 기대 많이 많이 하고 기다릴 테니 가끔씩 근황도 올려주고 그래라...! - 2019년 8월 30일, 민규
네가 한 모든 것들은 오래 기억될 거고, 네가 꿈꾸는 길은 빛이 날 거야. 건강하게 잘 다녀와, 많이 고마웠어 - 2021년 2월 5일, 신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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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기에 뭐라도 해보고 뭐라도 기록하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과연 그 시간과 기록의 뭉치가 내게 어떤 결과를 남길지 궁금해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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